테니스는 오랫동안 유럽과 미국 중심의 스포츠로 인식되어 왔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아시아에서도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들이 등장하며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일본, 중국, 한국은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테니스 문화를 발전시켜 왔고, 그 과정에서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도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 나라의 레전드 테니스 선수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커리어와 아시아 테니스의 성장 배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작은 체구, 불리한 인프라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이들의 이야기는 단지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 – 니시코리 케이, 아시아 남자 테니스의 상징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테니스의 세계화를 이끌었던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니시코리 케이(Kei Nishikori)가 있습니다. 1989년 마츠에 출생인 그는 2007년 프로로 데뷔한 이후 꾸준히 세계 상위 랭커로 활약하며 아시아 남자 테니스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특히 2014년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 진출은 아시아 남성 선수 최초라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기록은 그가 아시아 선수로서 얼마나 큰 벽을 넘어섰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니시코리는 빠른 발놀림, 안정적인 스트로크, 그리고 전략적인 경기 운영으로 유명합니다. 체구가 큰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단점을 극복하고 기민한 움직임과 집중력을 무기로 경쟁해왔습니다. 세계 랭킹 최고 기록은 4위(2015년)이며, ATP 단식 통산 12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라파엘 나달을 꺾고 동메달을 획득하며 일본 스포츠계 전반에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니시코리의 성공 이후, 일본에서는 테니스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유소년 육성 시스템도 빠르게 확장되었습니다. 미소시루와 스시 문화 못지않게 ‘니시코리 테니스’는 일본 스포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최근에는 남자보다 오히려 여자 선수들이 약진하고 있으며, 오사카 나오미(혼혈)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과 일본의 이중 국적자로, 4대 그랜드슬램에서 총 4회 우승하며 여성 테니스의 새 얼굴로 떠올랐습니다.
중국 – 리나와 여성 테니스의 르네상스
중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테니스 강국으로 도약한 나라입니다. 그 출발점에는 여성 테니스 선수 리나(Li Na)가 있습니다. 그녀는 1982년 우한 출생으로, 1999년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그녀의 등장은 단순한 스타 탄생이 아니라, 중국 테니스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리나는 2011년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최초의 그랜드슬램 단식 챔피언이 되었고, 2014년 호주오픈 우승으로 총 2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적이며, 강한 포핸드와 날카로운 백핸드가 특징입니다. 특히 빠른 템포의 랠리에서 강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정신적으로도 매우 단단한 선수였습니다.
리나의 성공은 중국 내 스포츠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후 테니스 인프라 확대에 본격적으로 투자했고, 베이징과 상하이에 ATP/WTA 투어가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등 국제 대회의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또한 리나는 ‘자율 계약 선수제도’를 통해 국가 체육 체계 안에서도 선수 개인의 자유를 확대시킨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길을 따라 장슈아이, 왕치앙, 젱친원 등 새로운 여성 선수들이 등장하며 중국 여성 테니스는 세계 최정상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리나는 은퇴 이후에도 자서전 출간, 방송 출연, 브랜드 모델 활동 등을 통해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는 '스포츠 이상의 존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중국 여성의 독립성과 가능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단순한 스포츠 선수를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 – 정현과 테니스의 가능성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테니스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편에 속했지만, 정현(Chung Hyeon)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1996년 출생인 정현은 2014년 프로 데뷔 후 빠르게 성장하며 2018년 호주오픈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남자 단식 4강에 진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스트레이트 세트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현의 장점은 단단한 스트로크, 안정적인 수비, 그리고 후방에서의 랠리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스피드보다는 지구력과 일관성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로 승부했고, 조코비치와 유사한 경기 스타일로 종종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세계 랭킹 19위까지 상승하며 한국 테니스 역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허리와 발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가 기대만큼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약은 분명 한국 스포츠사에서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이후 정윤성, 권순우 등 후배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현재 권순우는 ATP 투어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정현의 뒤를 잇는 차세대 주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정현의 활약 이후 유소년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학교 스포츠와 민간 아카데미 중심의 육성 구조도 점차 발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었던 테니스가 이제는 스포츠 꿈나무들의 진지한 진로 선택지 중 하나로 부상했습니다.
일본의 니시코리, 중국의 리나, 한국의 정현은 각각 다른 스타일과 배경을 지녔지만, 아시아 테니스의 잠재력을 전 세계에 알린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도전은 단순한 개인 성취가 아니라, 지역 스포츠의 한계를 넘어선 ‘문화적 전환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앞으로도 아시아 출신 테니스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더 많은 발자취를 남기기를 기대하며, 이들의 이야기는 아시아 스포츠의 성장과 자긍심을 상징하는 영원한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